조선전기의 음악사적 특징
1. 악학발달
1) 율관제작 - 악기제작위한 기준음 제작
2) 기보법발달
- 정간보: 세종때 제작된 동양최초의 유량악보로 우물정자 모양에 음의 싯가 구분가능하고, 율자명으로 표기
- 오음약보: 세조때 중심음 宮을 중심으로 위로는 상1, 상2, 상3, 상4, 상5 밑으로는 하1, 하2, 하3, 하4, 하5로 표기한
상대음고로 표기함.(국악의 사용음은 5음계로 궁을 중심으로 한 상대적 음고표기식)
- 합자보: 악학궤범에 상세히 기록됨
. 현법- 문현, 유현,대현, 괘상청, 기괘청, 무현
. 괘법- 괘이름 1,2,3,4,...
. 탄법: 도(친다), 구(뜬다), ㅣ (문현, 유현, 대현만 친다) ㅡ (괘상, 기괘, 무현만 친다), ' (왼쪽점:한음만 친다) '(오른쪽점:
한음만 뜬다
.지법: 모지, 식지, 장지, 무명지, 소지
. 합자법: "모지로 대현5괘를 짚고 다섯줄을 밖으로 내긋는것" 이런 연주기법을 앞에서 설명된 약자를 조합하여 표현하는식
(기호를 모두 표현할 수 없어서 여기서는 표현을 생략함)
3)악서편찬 - 악학궤범을 편찬함
. 언제: 홍치 6년 (성종 24년, 1493년) 8월 상순에 찬정
. 누가 : 장악원 제조 유자광, 예조판서 성현(주로 편찬한 사람, 서문작성), 장악원 주부 신말평, 전악 박곤 과 김복근
. 왜: 장악원에 있던 의궤와 악보가 오래되어 헐었고, 요행히 남은 것들도 모두 소략하고 틀려서 그것을 수교하려고
. 무엇을: 9권 3책으로 구성 권1 음악이론 정리, 권2 여러제향과 조회 연향때 악기 진설법 비교....
권6- 아부 악기 도설 , 권7 당부악기도설 향부악기 도설, 권9 - 관복도설
기술법 사용- 음악의 유실을 방지하려는 그 찬정의 목적을 달성함.
2. 아악정비
12궁 7성용 28성도
12궁= 12율이 각자 궁이 됨
7 성용= 궁 상 각 변치 치 우 변궁 의 7가지 음만 사용함(옥타브 위의 음은 사용안함)
28성 도출
. 정성 12 : 황, 대, 태, 협, 고, 중, 유, 임, 이, 남, 무, 응
. 정반성 8 : 청대, 청태, 청협, 청고, 청중, 청유, 청이, 청무
. 반정성 3: 임, 남, 응
. 변반성 5: 청황, 청태, 청고, 청임, 청남
평조 (황, 태, 중, 임, 남) = 솔음계 (솔라도레미) = 치조(치우궁상각)
계면조(황, 협, 중, 임, 무) = 라음계 (라도레미솔) = 우조(우궁상각치)
궁상각치우(도레미솔라)
향악7조 ( 아악은 12궁을 쓰지만, 향악은 오직 7조만 쓴다)
낙시조 (거문고 대현5괘를 궁으로) 우조(유현 4괘를 궁으로 )
1지 (협, 고)
2지 (중, 유) - 각조
3지 (임) - 치조
4지(횡지= 이, 남) 4지(횡지=이, 남)- 우조
5지(우조= 무, 응)
6지(팔조= 청황) - 궁조
7지(막조= 청태) - 상조
7조= 7가지 중심음 낙시조 4개, 우조 4개 하지만, 낙시조의 4지= 우조의 4지는 동일음 따라서 총 7가지가 됨.
cf. 낙시조 횡지는 줄이 너무 팽팽해서 사람들이 우조로 탄다 (성현 曰)
이후 역사적으로 우조, 웃조, 낙시조등에 대한 의미는 상당히 혼용되어 사용됨.
조선 정악 전습소 시절에는 율명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궁상각치우를 사용하기도 함. 혼용사용되어 현재에도 의미가 모호하게
전해지는 면이 있음.
3. 신악창제
조선전기의 신악창제는 음악은 그대로 두고 주로 가사만 새로 지어서 사용함.
. 여민락은 용비어천가 125장중 1,2,3,4장과 125장의 가사를 사용함.
. 정대업 15곡(세종때, 남려궁 계면조)--> 정대업 11곡 (세조때, 청황종 위우)
. 보태평 11곡 (세종때, 임종궁 평조)--> 보태평 11곡 (세조때, 청황종 위치) --> 대악후보(1759년) 보태평중 역성에 가사만
바꾸어서 중광 (임진왜란중 선조의 업적을 치하하는 노래 추가) 순서는 영광.정명 뒤에 중광 들어감
(영광.정명은 한곡처럼 같이 붙여서 연주함)
.....................................................................................................................................................................
조선전기는 세종조음악이라고 해도 될것이다. 그간 내려오던 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악학궤범은 지금도 그 책을 참고로 옛날 악기들이 다시 재현되어 만들어 지기도 하고
관복을 만드는 방법도 고증하여 재현되고 있다.
조선후기로 들어오면서, 특히 일제 강점기를 통하여 국악중 궁중음악은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운영되던 궁중음악이 무너지고 이왕직아악부 (일본 궁내부 소속)와 그 후에 국악사양성소
- 국악중고등학교(현재)를 중심으로 전승이 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생각된다.
국가의 몰락은 곧 국가 음악의 몰락과 같이 한다. 그나마, 권번(일종의 기생들 교육기관)이 있어서 전통음악의
다수가 전승이 된점은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음악의 체계적 이론등에 대한 정리는 조선전기에 모두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고
조선후기에는 변주곡의 형성(영산회상, 가곡), 산조, 판소리의 발생, 이왕직아악부의 음악등을 그 특징으로 볼수있다.
즉, 이론적 배경은 전기에 이루어진 것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