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중의 3000명이라....아직 갈길이 멀었군요!|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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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23:57
문화재청 설립 이후 처음으로 열린 ‘무형문화재 조교·이수자 토론회’첫걸음 뗀 제도 개선 논의,… ‘보유자만 챙기기’ 근본 수술할까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로서 20년을 보냈다. 이제는 보유자가 되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수자로서 보낸 세월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이렇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이 마련해 지난 4월10일 대전 정부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을 위한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조교)·이수자 토론회’에서 만난 한 자수장 이수자의 말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단체)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150여 명의 전수교육조교와 이수자들이 참석해 넋두리 혹은 한풀이를 풀어놨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보다 5배나 많은 숫자 그야말로 보유자의 그늘에 가려 햇볕 한 줌 쪼이기 어려운 처지인 조교와 이수자들. 이들에게 ‘해 뜰 날’은 보유자로 지정되는 날밖에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다수 종목의 조교와 이수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사정은 유홍준 청장에게 들을 수 있었다. “문화재청 설립 이래 처음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무형문화재 전승 체계에서 허리 구실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무형문화재 제도 혁신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동안 혁신을 모색했지만 청장이 바뀌면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올해에는 틀림없이 혁신안을 내놓겠다.” 아직 무형문화재 제도 혁신안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12월16일 ‘무형문화재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종목 선정 당시엔 어려움을 겪었지만 굳이 법적으로 지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승이 이뤄지는 종목이 적지 않고, 보유자에게 집중된 지원을 조교와 이수자로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무형문화재 30호 가곡 조교인 이호규씨는 “한번 지정되면 바뀌지 않는 보유자로 인해 60세 이상의 보유자가 80%에 이른다”면서 “기·예능 보유자 연령을 낮추고 조교와 이수자에 대한 행정적 편의와 자율권 확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다양한 행정적·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보유자는 전수교육 권한을 부여받아 후계 전승자를 양성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기·예능 전수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전승자에게 전수교육 이수증을 발급하고 전수교육조교 추천권도 준다. 매달 100만원의 전승지원금을 받는 것은 드러난 혜택일 뿐이다. 일부 인기 종목 보유자는 각종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잇속을 챙기는 일도 흔하다. 애당초 종목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무형문화재 제도가 실제로는 보유자만을 지원하는 장치로 전락한 셈이다. 여기에서 조교와 이수자들의 비애가 쌓이고 보유자 지정 논란이 싹튼다. 모든 전수자들은 보유자가 되면 오랜 고통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예능 전수를 천직으로 여긴다. 하지만 종목별로 보유자는 대체로 한 사람뿐이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는 111개 종목 200여 명인데 조교와 이수자는 3천 명을 웃돈다. 적어도 15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보유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전승자는 잃어버린 꿈을 달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종목이 지정되면 조교나 이수자라도 될 수 있기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1970년대에 종목 지정에서 탈락한 명창 고 김옥심씨의 경기민요는 맥이 끊길 지경이다. 서울소리보존회 남혜숙 이사장이 ‘재야 명창’으로 그의 소리를 잇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전승자들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을 통해 일생을 평가받는다. 그런데 보유자 지정 때문에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 바로 지난 3월3일 문화재위원회(무형문화재분과) 심의를 거쳐 가야금산조 보유자로 인정된 양승희씨다. 가야금산조는 고 김난초 계열, 함금덕 계열, 김윤덕 계열 등이 지정돼 있었는데, 지난 1989년 김난초씨가 사망한 뒤 13년 동안 보유자가 없었다. 이날 양씨는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보유자로 인정됐다. 더구나 2002년 6월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인정예고’됐음에도 보유자 인정이 4년 가까이 미뤄진 것을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가야금산조 보유자 지정을 둘러싼 옥신각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 문제는 양승희씨가 인정서를 받으려고 문화재청을 찾은 3월13일 발생했다. 이날 예정된 행사 시작 시각은 낮 2시였다. 이날 양씨는 고속도로 사정으로 정시보다 2~3분 늦게 도착했지만 미리 양해를 구했기에 늦게나마 행사장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양씨는 행사장 대신 문화유산국장실로 안내를 받았다. 이미 행사가 시작돼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김문성 서울소리보존회 사무국장이 행사장 입장을 요구하자, 무형문화재과 문상원 과장이 “중대한 민원이 제기되어 사실관계를 조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내 양승희씨는 행사장에서 보유자 인정서를 받지 못했다. 대신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원인과의 ‘갈등’을 놓고 문화재청 관련자들과 옥신각신해야 했다. 이날 양씨는 “민원인의 소송이 제기되면 법적으로 해결을 하겠다. 만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인정서를 반납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직원들은 막무가내였다. 개인 간의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정서를 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결국 양씨는 문화재청 직원의 계좌에 민원이 제기된 금액을 입금하고 각서를 쓴 뒤에야 도착 4시간40분 만에 청장실에서 홀로 인정서를 받을 수 있었다. 문화재청 직원들이 ‘민원 해결사’ 구실을 한 셈이다. 이날 문화재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일부에서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무려 4년여 만에 이뤄진 심의임에도 기량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계파에 속한 두 사람이 동시에 보유자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보유자 인정이) ‘보류’된 상태에서 심의와 검토가 계속 진행되어 동일 안건에 대해 다시 인정예고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류 기간에 문화재심의위원을 역임한 한 국악계 인사는 “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기억은 있는데 위원들이 ‘잡음’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정식으로 다루진 않았다”고 말했다. 정말로 무형문화재 보유자 제도는 바뀌게 될 것인가. 이미 여러 차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수술에 이르지 못하고 임시 처방식 처리에 그쳤을 뿐이다. 지난 10일 토론회에서 유 청장이 ‘혁신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힌 만큼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형문화재 제도 안팎을 폭넓게 재검토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전승자들의 바람은 경제적 지원의 확대나 문화재청에서 발급하는 ‘이수증’ 등에 머물지 않는다. 고성오광대 전승교육조교인 이호원씨는 “종목을 선정하는 것은 문화재위원의 몫이라 해도 보유자 인정 과정에 전승자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