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온글) 외팔로 부는 정악대금의 밤, 세상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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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00:06
외팔로 부는 정악대금의 밤, 세상은 행복했다 | |||||||||||||||||||||||||||
[김영조의 민족문화 사랑] 복사골문화센터 이삼스님 풍류음악회 열려 | |||||||||||||||||||||||||||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불리는 대금은 두 팔로도 연주하기가 쉽지 않은 악기이다. 외팔로 부는 대금,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 어제 6월 9일 밤 7시 부천문화재단 복사골문화센터 아트홀에서는 이삼스님 초청 풍류음악회가 열렸다. 외팔로 부는 정악대금의 밤이었다.
이삼스님, 그는 무형문화재 제20호 기능보유자 녹성 김성진 선생으로부터 대금을 배우고,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 두루 공부했으며, 85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한 포교를 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오른팔은 마비되고, 대금 연주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이 비극적 삶에 마침표를 찍고, 스님은 외팔로 연주할 수 있는 대금과 그 연주법을 개발해낸 것이다. 외팔로 연주하는 대금은 어떤 모습일까? 스님은 자신이 부는 대금에 '여음적(餘音笛)'이란 이름을 붙였다. 여음적은 기본 대금을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게 개량한 것인데 왼쪽 팔의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게 서양 관악기들처럼 키(key)를 붙여 만들어진 대금이다. '여음적', 넉넉한 소리라는 뜻일까?
이번의 음악회는 이삼스님의 정악 대금독주에다 가야금과 대금의 병주, 해금과의 병주, 대금ㆍ장고ㆍ가야금ㆍ해금ㆍ창사, 그리고 여창가곡ㆍ남창가곡이 어울린 정악 음악회이다. 이번 음악회에서 관심을 끈 것은 대금(이삼스님)ㆍ장고(박거현)ㆍ가야금(송인길)ㆍ해금(윤문숙)이 협연하고, 이동규ㆍ김숙현의 창사(궁중무용에 부르던 가사)가 더해지는 영산회상(상영산)이다. 이런 연주 형식은 이삼스님이 우리 음악의 원류를 찾는 시도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엔 섣달 그믐날엔 나례(儺禮) 의식을 했다. 이는 민가와 궁중에서 묵은해의 악귀를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으로 이때 무용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특히 악귀를 쫒는 무용 처용무를 추는데 두 번째 처용무 때 영산회상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삼스님은 이를 새롭게 재현해보려는 뜻으로 이 연주 형식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질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데(日暮天無雲) 봄바람이 미미한 조화로움을 부채질하네(春風煽微和) 고운 임 맑은 밤을 아름답게 여겨(佳人美淸夜) 새벽이 되도록 술 마시고 노래하네(達曙?且歌)"
이것이 바로 창사의 사설 일부인데 도연명(陶淵明) 아름다운 시 '의고(擬古)'를 옮긴 것으로 처음 부르는 것일 뿐 아니라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우리 음악의 원류를 찾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남창가곡엔 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준보유자 이동규, 여창가곡엔 노래 앙상블 '시가인' 대표 강숙현이 함께 했다. 가곡은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하며,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것으로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시조시를 노래하는 한국의 전통 성악곡이다. 대금(이삼스님), 장구(박거현), 가야금(송인길), 해금(윤문숙)에 맞춰 "벽사창이 어룬 어룬커늘 님만 여겨 펄떡 뛰어 나가보니 / 님은 아니 오고 명월이 만정헌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란 사설의 이동규 언락이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님인 듯 반겨 뛰어 나가보니 봉황의 그림자였다. 임을 기다리는 마음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이어서 강숙현의 우락이 맑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궂은 비는 붓듯이 온다. / 눈 정에 거룬 님을 판첩쳐서 만나자 허고 굳게 맹세하였건만 / 이 풍우 중에 제 어이오리 / 오기 곧 오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예전 이삼스님의 연주 때도 두 번이나 이 우락을 노래했는데 그땐 비가 왔었다. 이삼스님은 우락 때문에 비가 오는가 보다 했지만 이날은 개었다. 노래는 보통 서서 부른다. 하지만 가곡은 앉아서 그것도 책상다리로 앉아서 부르면서 어떻게 저렇게 높은 음역의 속 소리를 저렇게 거침없이 내는지 기가 막히다. 그들의 맑고 청아한 소리는 청중들의 가슴을 시원스럽게 열어놓았다. 가끔 이동규의 목소리가 가라앉아서 확인해보니 성악의 적인 감기에 걸려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연주회의 마지막은 '요천순일지곡' 또는 '청성자진한잎' 이라고도 부르는 대금 정악 독주곡의 으뜸인 '청성곡'이다. 청성곡은 정악의 아름다움을 독주로 가장 잘 보여준다는 곡인데 역시 쭉 뻗은 선율의 아름다움과 이어지는 잔가락의 시김새가 조화를 이루는 스님의 환상적인 독주는 청중을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마력을 보인다.
그런가하면 '긴염불'이라고도 부르는 '헌천수'의 해설에서는 메트로놈으로 잴 수 없을 만큼 느린 음악이라는 설명을 하고, 우리음악이 서양음악과 어떻게 다른지를 조목조목 그리고 쉽게 풀어주어 역시 우리 전통예술 해설의 대가임을 확인해 주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색소폰 연주자인 '문화저널21' 최세진 발행인이 이삼스님에게 "여음적에서는 일부 구멍(지공)을 키로 막아 소리를 내는데 손으로 막아 소리를 내는 것과 차이는 없는가?"라는 질문했다. 이에 이삼스님은 주저없이 "한쪽 팔로만 대금을 불기 위해 일부 구멍(지공)은 키를 써서 누르게 했는데 이것은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거나 연주자의 미세한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 손으로 누르는 것보다는 약간의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미세한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라며 솔직한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욕심인지 모른다. 이삼스님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그 어럽다는 대금 연주를 외팔로 해낸다는 자체야말로 감히 누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의 연주는 본인이 직접 외팔로 정성스럽게 만든 악기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물론 이날 연주에도 옥에 티는 보였다. 그 좋은 공연장의 좌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음향 조정에 실패하여 훌륭한 연주에 누를 끼친 부천문화센터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주자들, 특히 외팔로 연신 땀을 닦아가며, 눈을 감은 채 연주해야 했던 이삼스님에게 이런 문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도 이날 연주회를 경청한 청중들은 오랜만에 전통의 진수를 맛보는 정악대금 연주에 푹 빠진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서가 메마른 사회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한다. 특히 음악이 숨을 죽였을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때에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주는 정악 한 바탕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공연이 아닐까?
아마도 이날 외팔로 대금을 분 순간 이 세상은 행복해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온 세상에 만파식적이 울린 시간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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